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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설립된 ‘봉남 미술관’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작품세계를 전파하고 싶습니다”

화업 50주년 기념 초대전 연 서봉남 화백

“이 시대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느꼈다. 서봉남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서봉남 화백을 평한 말이다. 김 교수의 이러한 한마디에서 서 화백의 인물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지난 50년간 미술이라는 한길만 걸었을 뿐만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성화(聖畫) 77점을 남긴 서봉남 화백. 그는 또 무려 27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아내의 투병 생활을 묵묵히 뒷바라지하기도 했다. 그의 삶 자체가 많은 이의 존경과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서 화백의 화업 50주년을 기념한 초대전 ‘개구쟁이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 지난 4월 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재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렸다. 그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 ‘인생의 결론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서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지난 50년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20대 후반에 등단, ‘동심 작가’로 이름 알려
서봉남 화백은 우리나라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기독교 미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7점의 성화는 물론이고 30년 전에 한국 기독교 100년을 기념한 대작, ‘영광’을 발표하기도 했다. 예수의 일생을 한국 동양화의 풍으로 남기는 운보 김기창, 혜촌 김학수 화백을 잇는 2세대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이력도 매우 화려하다. 현대화랑, 조선화랑을 비롯한 총 16회의 개인전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해외 미술관에서 수십 회의 초대전을 열었다. 여기에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대한민국(예술부문)산업훈장, 한국미술인의날 특별공로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대한민국창작미술협회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국내 미술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그의 이름을 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50주년 초대전에 대한 서 화백의 감회도 남다르다고 한다.

“저는 남들이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냐?’고 물어보면 2살 때라고 말합니다. 손에 뭔가를 쥐면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었죠. 물론 많은 아기들이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제가 화가가 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도 커서 화가가 되겠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20대 후반, 저의 첫 전시회 이름이 바로 ‘개구쟁이전’이었습니다. 그렇게 50년이 지나 다시 그 개구쟁이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초대전의 제목도 ‘개구쟁이 이야기가 있는 풍경’으로 정했습니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살아있는 동안 저를 늘 응원해주었던 아내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서 화백이 화가의 꿈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철이 들 무렵, 그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타고난 ‘금수저’는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늘 주중에는 직장에 다녀야 했으며, 겨우 주말이 되어서야 붓을 들 수 있었다. 그가 그림을 그린 후 그는 ‘동심화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림에는 늘 아이들과 엄마가 등장하며, 어린 시절의 철없고 한없이 행복했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실 동심을 주제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제가 경쟁을 하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은 모두 미래를 향해 경주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미래를 향해 달려갈 때, 저는 오히려 과거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이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5년간 성화 77점 완성
그가 성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한지 딱 2주일 만이었다.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 하나의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너의 달란트는 무엇이냐’라는 것.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달란트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기독교 미술’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와 상의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성화 작업을 시작했다.



“성경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6천 년 전의 문화, 생활, 관습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비로소 성경의 내용을 그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5~6번 정도는 읽은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그림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7개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무려 35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평생을 바쳐서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지대한 노력의 결과일까. 그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은 초대를 받은 화가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무려 32개국의 나라에 초대되어 해외 관람객들과 만남을 이어왔다. 특히 그의 동양적인 화풍에 해외의 큐레이터들이 먼저 반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원조 한류 화가’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그가 선보이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순수한 한국적 문화라는 주제, 그리고 인물의 동적이면서 정적인 움직임은 서양인들의 눈에는 매우 생경하지만, 매우 신선하게 다가가기도 했다. 특히 유화 중에서도 황토색과 흰색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화풍은 한국의 경치와 문화의 순수한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업적들은 그가 미술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나서 성취했다는 점에서 더욱 성과가 있다.

서 화백에게 ‘미래의 계획은 무엇인가?’를 물어봤지만, 그는 예술가다운 대답을 내놨다.
“예술은 순수한 미래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순수예술가들의 미래를 ‘비어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계획된 것은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봅니다. 현재의 혹은 미래의 특정한 시점에서 느끼는 것이 예술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에게는 ‘미래’, 혹은 ‘계획’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크리스천이다 보니, 이제까지 그린 성화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실행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왔다면, 앞으로 20~30년은 이 그림을 전 세계에 알리고,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국내에서도 짓고 싶다고 말한다. 영국에는 이미 ‘봉남미술관’이 만들어졌다는 것. 이제는 고국에도 미술관을 지어 더 많은 사람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한평생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깊은 영혼의 감동을 주었던 서봉남 화백. 그의 소망처럼, 이제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인생의 참된 진리를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한다.

통일부 장관, 대북 식량지원관련 의견수렴 간담회 참석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4일 오후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대북 식량지원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민간단체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PR) 7대 종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김연철 장관은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3일(현지시간) 발표한 북한 식량안보 평가보고서 결과를 설명하며 "북한주민에 대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검토해 나가겠다"며 "대북 식량지원에는 국민적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므로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민간단체의 솔직한 의견과 인도적 지원 관련 개선사항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정부 주도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벗어나 민간과 협력을 강조했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정부간 관계가 원만히 풀리지 않더라도 민간 교류는 활발히 활성화하여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만간의 역할이 중요한 때"라고 언급했다. 박창일 평화3000운영위원장은 "민간단체는 수많은 협상과 모니터링을 했다"며, "정부가 유엔 기구를 통한 것 외에


文대통령, 13일 WFP사무총장과 北 식량지원 방안 논의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17시 30분 부터 약 1시간 동안 방한중인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이하 WFP)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북한 식량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음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고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이 자리에서 비즐리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에게 최근 북한 식량 사정에 대한 WFP,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공동 조사결과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며, 현재 북한 내 일일 배급량이 심각하게 낮은 수준으로 파악되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비즐리 사무총장은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한 인도적 지원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문 대통령은 이에 공감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비즐리 사무총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설명했으며, 비즐리 사무총장은 대북 식량지원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제시했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비즐리 사무총장은 북한 인도적 식량 지원에 대해 앞으로 긴밀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한국이 어려웠을때 WFP로부터 도움 받은것을 잊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뿐 만이 아닌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

“영국에 설립된 ‘봉남 미술관’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작품세계를 전파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느꼈다. 서봉남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서봉남 화백을 평한 말이다. 김 교수의 이러한 한마디에서 서 화백의 인물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지난 50년간 미술이라는 한길만 걸었을 뿐만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성화(聖畫) 77점을 남긴 서봉남 화백. 그는 또 무려 27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아내의 투병 생활을 묵묵히 뒷바라지하기도 했다. 그의 삶 자체가 많은 이의 존경과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서 화백의 화업 50주년을 기념한 초대전 ‘개구쟁이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 지난 4월 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재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렸다. 그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 ‘인생의 결론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서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지난 50년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20대 후반에 등단, ‘동심 작가’로 이름 알려 서봉남 화백은 우리나라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기독교 미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7점의 성화는 물론이고 30년 전에 한국 기독교 100년을 기념한 대작, ‘영광’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