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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장성 Nguyen Minh Tien 부성장, 박상종 회장초청으로 서울약령시협회 방문

베트남 하장성 Nguyen Minh Tien 부성장, 박상종 회장초청으로 서울약령시협회 방문

 

지난 일요일 동대문의 서울약령시장에서 베트남 하장성의 부성장과 의료국장, 노동국장, 농업국 부국장, 외사국 부국장, 투자계획국 실장, 베-한 친선협회 사무총장, 외사국 국제협력 실장을 비롯해 현.전직 서울약령시협회 회장단 및 임원진과 코베카 권성택 상임부회장을 비롯해 권혁근 부회장, 김영일 부회장 및 운영위원들, 조선대학교 안경환 교수가 참석해 하장성에서 생산되고 있는 2천여가지 약초들에 관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하장성은 베트남의 최북단에 위치한 산악지대의 성이다. 하장성 도심에서 하노이까지 320키로의 거리이다 인구는 845,531명으로 남성은 50.4%, 여성은 49.54%다. 성은 현과 1개의 시, 그리고 195군, 리,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장성의 산업구성비율은 농업, 임업, 수산업이 28.96%를 차지하며 서비스업이 44.38%. 독특한 기후의 장점을 가진 3개의 지역으로 구성되어있다.

 

대한민국 최대 한약재 전문시장 서울약령시

서울약령시는 우리나라 한약재 유통의 70%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한방 전문시장이다. 한의원, 한약방, 한약조제소, 한의약, 후출입상 등 한방관련 업소 1천여개에 종사자는 4,500명이 넘고 1일 유동인구는 30만명에 이른다. 질병의 진단과 치료, 건강관리, 약재의 유통까지 모든 한방 서비스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동양 최대최고의 한방테마타운이다.

 

 

조선시대 여러 의서는 한글로 옮겨져 백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건강을 지키고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해 한의약을 올바르게 활용하도록 노력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질병이 발병했을 때보다 평소에 사람의 몸을 조화롭게 해서 건강을 지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지혜를 실천하였다. 오늘날 웰니스의 개념과 통하는 선조들의 지혜는 서울약령시에 계승되어 우리에게 전파되고 있다.

 

 

서울약령시 최영섭 회장은 하장성의 부성장 일행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으며 하장성의 수천가지의 약초에 관심을 가지고 서울약령시장과의 한방문화교류를 할것이라고 밝혔다.

동대문구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이자 전임 약령시장 회장을 역임한 박상종 회장이 마련한 저녁만찬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뤄진 아름다운 가을밤 만찬의 자리가 되었다.





기나긴 악연 한일관계 역사
지난 7월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국가로 지정으로 시작해 한일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보단 갈등과 부정적인 관계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한일관계의 역사를 기조로 제작하는 미디어에는 주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위주로 만들고 있지만 한일관계의 역사는 그보다 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시작은 그래도 우호적 한일관계의 시작은 대략 3세기부터 시작되며 벼농사 문화를 전수해주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벼농사 문화 전수와 함께 기록적 문헌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으나 교역 또한 활발히 이뤄졌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 중 백제는 일본(당시 왜라 불리며 이 둘의 정확한 교류시기는 불명이다.)에게 불교와 한자등 선진문화와 기술을 전수하고 백제는 신라와의 전쟁당시 일본에게 군사인력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7세기 초중반 까진 한일관계는 나름 우호적인 측에 속했었다. 최근 일본의 가타카나 문자가 신라에서 전수되었다는 가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진실을 뒷받침할 근거자료가 부족해 이 가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 없다. 개입과 침략의 기억 7세기 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