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 속에 매몰된 오랜 착각…But, “스스로 지키려 노력하지 않은 국가는 몰락한다”

▲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떠나고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리기까지는 불과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 이미 아프간 각 지역은 탈레반의 맹렬한 공습으로 항복 선언을 했고, 결국 지난 8월 15일(현지 시각)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면서 아프간의 실질적인 권력은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됐다/사진 미국 국방부 제공
▲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떠나고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리기까지는 불과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 이미 아프간 각 지역은 탈레반의 맹렬한 공습으로 항복 선언을 했고, 결국 지난 8월 15일(현지 시각)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면서 아프간의 실질적인 권력은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됐다/사진 미국 국방부 제공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떠나고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리기까지는 불과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 이미 아프간 각 지역은 탈레반의 맹렬한 공습으로 항복 선언을 했고, 결국 지난 8월 15일(현지 시각)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면서 아프간의 실질적인 권력은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됐다.

사실 탈레반은 지난 몇 년간 정부군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점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아프간 정부군이 부패, 민족 파벌주의, 사기 저하, 탈영, 자원 소진, 불량 보급품 등 내부적 문제만으로도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군은 탈레반에게 앞으로 있을 공습에 대해 미리 통보해 피할 시간을 주거나, 무기와 장비를 판매하는 등의 일도 공공연히 자행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많은 아프간 국민이 오래전부터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탈레반과 싸우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항복하는 쪽을 택했다.

물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다른 나라들 역시 아프간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나,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이 아프간 정부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아프간에서 점진적으로 군대를 철수시켜왔다. 그럼에도 아프간 지도부와 권력층은 정부나 군대에 만연해 있는 부패나 파벌주의를 개선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과 돈을 취하고 자기 파벌을 지원하는 등 본인 세력을 확장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또 그들은 오바마 정부에서부터 트럼프 정부, 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장차 아프간에서 철수하겠다고 보내는 신호를 한결같이 무시했다. “미국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던 그들의 믿음은 그들이 범한 가장 큰 실수였다. 

이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패권 전쟁)의 중심 무대로서 자신들의 역할과, 그것이 시사하는 아프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라는 거대담론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실제로 미국이 여러 차례 철수 결정을 번복하는 것을 목격하며 이들의 믿음은 점차 강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과 다른 국가들 역시 아프간 정부를 개혁하는 일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결국 트럼프 정부는 2020년 2월 29일 탈레반과 무력 충돌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으로서 `도하 합의`를 체결했다. 당시 미국과 NATO 동맹국은 탈레반이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아프간에서 활동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의 조건을 지키기만 한다면, 14개월 안에 아프간에서 모든 군대를 철수한다는 데 의견의 합치를 봤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2021년 9월 11일까지 아프간에서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2021년 9월 11일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실제로 도하 합의 당시 1만 2천여 명에 달했던 미군의 95%가 이미 올해 7월 말까지 철수를 완료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프간 지도부는 여전히 그들의 착각과 망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간 정부와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아직 철수하지 않은 미군 병력은 끝까지 주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미국 논평가와 여론에 의해 이들의 믿음은 마지막까지 단단하게 지켜졌다.

미국과 NATO 동맹군은 지난 20년간 탈레반을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해왔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아프간 군벌에 의존했으며, 이후 탈레반 세력이 강력해지자 오바마 정부는 2011년 파견 미군을 11만 명까지 급증시키기도 했다. 

또 2014년까지는 아프간 민병대와 반(反) 탈레반 봉기가 탈레반 퇴치를 위한 핵심 열쇠로 여겨졌으며, 이후 트럼프 정부에 들어와서는 미군과 NATO 동맹군이 아프간에 충분히 오랜 시간 주둔한다면 탈레반 스스로 실수를 저질러 자멸할 것이라는 게 당연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기 언급한 그 어떤 전략도 실제로 탈레반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한편으로 미국은 파키스탄이 다양한 방법으로 탈레반을 지원해 오던 것을 멈추지도 못했다. 지리상 아프간 바로 아래 위치한 파키스탄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당시 미군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기도 했으나, 이후로는 국경 분쟁 중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탈레반을 비밀리에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댐, 학교, 도로 등 국가기반시설 구축과 관련해 400여 개의 프로젝트에 총 30억 달러를 투자해왔다. 그런데 만약 아프간 정부가 붕괴되고 탈레반이 집권하게 된다면 인도가 그간 아프간 정부와 추진해 온 이 많은 경제 사업의 전망이 불확실해져 인도에 타격으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이유로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지원했고, 그 결과 탈레반 세력은 점차 약화되는 아프간 정부군과 달리 갈수록 강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프간 정부의 몰락은 스스로 지키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는 정부에 대해 미국이 더 이상의 지원을 그만둘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즉, 수십 년간의 노력조차 일순간에 허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은 현재 우리나라 지도부와 국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지난 8월 19일(현지 시각),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NATO 동맹을 침략하거나 적대적 행위를 할 경우 우리는 대응할 것이다"라면서 "이는 일본과 한국, 대만에도 동일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현재 미국에게 있어 미국의 동맹국들이 주는 의미가, 아프간이 주는 그것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표현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에 100% 확신이란 있을 수 없다. 늘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며, 각국의 지도자는 최악의 상황에조차 대응할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편, 이번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미국이 중동에서 벗어나 외교 정책의 초점을 중국, 러시아,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위협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년간 미국은 중동에서의 정보, 감시, 정찰 활동을 위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묶어 놓았고, 이는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미국이 즉각적이고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데 상당한 장애로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기치로 삼아, 해외에 쏟을 에너지를 국내 재건에 치중하겠다는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그는 아프간 철수에 따른 현지 인권 악화 등의 우려에 대해서도 “외국의 내분에 미군을 끝없이 배치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라며 해당 사안에 대해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철수 결정은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미군 철수 막바지에 탈레반이 아프간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림으로써 미국으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형국이 초래됐다. 미국 정부는 탈레반의 장악 능력을 과소평가한 반면, 아프간 정부군의 능력은 과대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선 기자회견에서 “탈레반보다 전쟁 수행에서 더 잘 훈련되고 무장된 아프간 정부군의 능력을 믿는다”라면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미군 철수가 채 완료되기도 전에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자, 미국으로서는 탈레반의 기세에 놀라 대사관을 버리고 황급히 탈출하는 모양새가 돼 버린 것이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다. 앞으로 미국이 할 일은 카불 공항이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탈레반에 압력을 가해 대피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하면서, 탈레반이 카불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지 않도록 경고하는 등 강경한 외교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로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함에 따라 수천 명의 사람이 카불 공항에 몰려들었고, 일부는 아프간을 떠나는 미군 군용기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현장은 아비규환 상황이다. 

더불어 미국은 지금껏 미군 및 NATO와 함께 일했던 시민, 인권 운동가, 언론인 등 탈레반의 보복에 노출 가능성이 큰 아프간인에게 비자를 제공하는 한편, 탈레반이 이들을 색출해 처형하지 못하도록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현재 카불을 배회하는 수만 명의 난민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도 이제 그 책임이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다는 점을 계속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임기 초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우선시한 바이든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간의 지나치게 빠른 붕괴가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탈레반의 태도를 어떻게 바꿀지는 불분명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레반이 스스로를 과신해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며, 무엇보다 카불 장악 이전에 다른 지역에서 자행한 보복 살인의 빈도가 상당한 수준에 달한다는 사실은 지금 시점에서 분명 우려해야 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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