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택 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 상근부회장

 

▲ 베트남 봉쇄 조치 강화(사진=vnexpress)
▲ 베트남 봉쇄 조치 강화(사진=vnexpress)

베트남의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 특히 베트남 제1의 경제수도 호찌민은 전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벌써 두 달 가까이 전 도시에 봉쇄조치가 내렸음에도 코로나 확진자 수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군인들까지 투입돼 방역을 돕고 있지만, 일반 서민들의 삶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공단들 역시 직격탄을 맞으면서 중소업체의 경우 생산량이 30%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경제적 위기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자연스레 그 불똥이 한국 경제로까지 옮겨오는 실정이다.

베트남은 지난 4월 말 이전까지 전체 코로나 확진자 수는 3,000여 명에 불과했고,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도 3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4월 27일부터 제4차 코로나 유행과 변이된 델타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하면서 4개월 만에 확진자 수가 5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2,000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초 코로나가 발발하자 베트남은 온갖 비난을 무릅쓰며 국경부터 철저히 차단해 코로나의 전파를 막았고, 그래서 지난 4월 이전까지는 코로나와 상관없는 일상을 유지하며 세계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베트남 정부와 국민은 방역 모범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경제도 고속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 권성택 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 상근부회장
▲ 권성택 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 상근부회장

그렇다면 우리는 베트남의 위기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베트남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은 우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베트남 경제와 우리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베트남 코로나 피해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호찌민과 그 인근 지역(빈증, 동나이, 롱안 성 등)에는 약 5,000개의 한국 중소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들 공단은 의류, 가방, 신발 등 봉제와 신발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모습은 흡사 7, 80년대 한국 봉제 산업을 이끌었던 구로공단을 옮겨놓은 것과도 같다. 코로나로 인해 비상이 걸린 것은 비단 이들 중소기업만이 아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이랜드 같은 대기업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일반 가전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호찌민 공장 역시 가동률이 30%에 머물고 있으며, 이랜드는 베트남공장 생산량이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다. 그럼에도 베트남은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한국이 무역수지 흑자를 낸 대표적인 국가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對)베트남 수출은 485억 달러, 수입은 206억 달러로 279억 달러라는 막대한 흑자를 냈다.

다른 한편으로 한-베 수교 30주년을 한 해 앞둔 현재,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단순히 경제적 관계를 넘어 역사적·문화적으로 매우 유사한 배경을 지닌 국가로서, 지난 30년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면 알수록 두 나라는 단순히 동반자적인 관계가 아닌 운명적으로 함께 가야 할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난 8월에 부임해 코로나라는 엄청난 도전을 뚫으며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분투 중인 Nguyen Vu Tung 주한 베트남대사는 지난 7월 국립외교원 주최 세미나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적인 관계 발전 가능성의 여러 항목 중에, 한국과 베트남은 지정학적으로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아 이해관계가 전혀 없으므로 오히려 더 가까운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경을 맞댄 대부분의 나라가 영토 문제로 서로 관계가 좋지 않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매우 적절한 말로 들린다. 또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한국과 베트남 모두 외세에 의해 남북이 분단된 역사가 있다. 아울러 두 나라 모두 북쪽으로 중국과 접하고 있는데,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은 1,400km에 이르고 북한 역시 이와 비슷한 1,300km를 중국과 맞대고 있다. 자연히 한국과 베트남 모두 중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대사 부분에서도 두 나라는 무척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의 고대사를 다룬 대월사기전서 제1권에 따르면 베트남의 첫 왕국인 “문랑국(BC2879~258)의 웅왕(雄王, 흥부엉)이 18대손까지 약 2,000년 동안 왕국을 이어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단군조선(BC2333~108년)과 매우 유사하다. 웅왕(雄王)의 웅(雄)자는 환웅(桓雄)의 웅(雄)도 같으며 베트남의 개천절이라 할 수 있는 웅왕에 대한 제사일(음력 3월 10일)은 공교롭게도 우리의 개천절인 10월 3일과 월과 일이 반대로 되어 있다. (*웅왕의 제례 의식은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렇듯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의 고비마다 비슷한 운명에 처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길을 가기도 하면서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다. 수교 30주년을 일 년 앞둔 시점에 나타난 뜻밖의 복병 코로나로 인한 베트남의 시련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기회일지 모른다. 이미 우리는 지난 6, 70년대에 베트남에 진 빚이 있다. 최근 일부 단체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현재로서는 양국 정부 및 관련 당사자들 간에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어 제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듯하다. 그렇지만 베트남, 특히 호찌민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이 관심을 갖고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베트남의 손을 잡아준다면 그들은 결코 우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옛말에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다. 많은 한국인은 지난해 코로나 발발 초기 베트남이 우리에게 행한 일련의 조치를 지금도 못내 아쉬워하며 그들에 대한 서운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섭섭함에 갇혀 코로나 이후 미래에 주어질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날려 버린다면, 그 역시 지혜로운 처신은 아닐 것이다. 비록 지금은 암울할지라도 코로나가 멎고 난 뒤의 베트남은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약속의 땅으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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