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전기 가격 급등에 대한 각국의 조치,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환경 저해 말아야

▲ 2020~2021년 에너지 가격 추이/사진 국제에너지기구 제공
▲ 2020~2021년 에너지 가격 추이/사진 국제에너지기구 제공

가스, 석탄, 전기 가격이 최근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많은 언론에서는 각국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규제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그 이유로 꼽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때문이라고 하는 건 부정확하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세계 에너지 수요는 유례없는 하락폭을 보였고, 이는 대부분의 에너지 가격을 수십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이후 에너지 가격은 예상 밖의 속도로 진행된 전 세계적 경기 회복, 겨울철 북반구에서의 난방 수요 급증, 예상보다 적었던 에너지 공급량 등으로 인해 강하게 반등했다.

이에 따라 최근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제 석탄 가격도 1년 전 수준의 약 5배 수준까지 치솟았고, 세계 양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과 인도는 겨울을 앞두고 매우 적은 재고만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은 미국, 유럽, 아시아를 포함한 주요 시장에서 천연가스의 대체재로 석탄의 사용을 늘리는 현상을 촉발했다. 석탄 수요가 늘면서 석탄발전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함께 증가했다. 가스 및 석탄 가격의 상승은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유럽 지역은 전력 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영국의 지난 9월 기준 전기요금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7배 수준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영국은 전체 전기 생산의 약 25%를 풍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북해에 부는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해상 풍력발전단지 가동이 거의 멈춰서며 전력공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등의 전력 가격 역시 급등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들어 유럽의 에너지 비용은 평균 20% 이상 올랐다. 

한편, 세계 석유 수요는 2020년 최저치에서 계속 회복하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석유 가격이 수년 만에 최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은 올해 말까지 전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석유 재고를 계속 끌어다 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에너지 전반에서의 가격 상승은 기업과 가정 모두에 에너지 관련 비용 증가라는 부담을 초래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기업의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가정의 소비와 지출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력 집약적인 산업에서는 일부 기업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유럽 일부 기업들은 가스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마진 악화를 이유로 암모니아와 비료 생산 등을 일시적으로 축소한 것으로 알져졌다.

중국에서는 10%였던 전기 가격 상한을 최근 정부가 20%로 올리기 전까지는 전기요금이 따로 상승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원재료인 석탄 가격은 급등하는데 판매상품인 전기 가격은 상승이 제한되자 손실 확대를 우려한 석탄발전업체들이 석탄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아직 석탄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국에서 전기 공급 부족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중국 성 전체의 2/3에 걸쳐 정전이 발생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를 포함한 대규모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 감산을 지시했다.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 성 등 동북 3성에서는 가정마저 정전사태를 겪어 정치적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대응 정책을 꾀할 필요가 있었다.

인도에서도 경제 회복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 증가가 석탄 부족을 야기했다. 자국 내 탄광업은 인도 전체 석탄 공급의 80%를 차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석탄 수요를 채우기 어려워 인도는 석탄 수입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 석탄 가격의 상승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이에 수입 석탄에 의존하던 발전소들은 가동을 늦추거나 심지어 중단했다. 국내 석탄에 의존하는 일부 발전소도 가동이 중단되기 시작했다. 석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몇몇 주들은 최근 심각한 전력 부족을 겪었고, 이는 거주민과 기업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재의 높은 석탄과 가스 가격은 수요 또는 공급 어느 한 측면의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 요인 모두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이러한 요인들은 수개월, 심지어 수년 동안 점진적으로 시장을 위축시켜왔다.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는 2014~2015년, 2020년 발생한 두 차례의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감소해 왔다. 이에 따라 두 자원의 공급은 코로나19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 더욱 취약해졌다. 그렇다고 각국 정부가 두 화석연료의 빈자리를 메울 만큼 청정 에너지원 및 기술에 대해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 온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한 각국의 봉쇄 조치 기간 동안 일부 생산시설에서는 유지보수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는 수요가 회복되고 있는 시기에 생산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는 특히 영국과 노르웨이 지역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천연가스 액화 시설에서의 정전, 업스트림에서의 문제, 예기치 못한 수리 작업, 프로젝트 지연 등 이 모든 요소 역시 세계 가스 시장을 더욱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첫 9개월 동안 정전에 영향을 받은 전 세계 LNG 공급량은 2015~2020년 같은 기간 평균에 비해 약 27% 증가했으며, 대부분의 정전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스프롬(Gazprom)은 단기 판매 계약을 축소했고, 유럽 내 저장 부지를 예년 수준으로 보충하지도 않았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유럽 최대 가스전인 흐로닝언 가스전을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한 대로 해당 가스전으로부터의 가스 공급을 계속 줄였다.

이렇게 공급이 축소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침체한 세계 경제가 반등하면서 2021년 상반기 주요 시장에서는 석탄과 천연가스 수요 모두 강력한 상승세를 보였다. 주요 시장에서의 천연가스와 석탄 소비는 2020년 상반기에 비해 각각 8%와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상반기 중국의 석탄 수요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반면, 석탄 생산량은 약 5% 증가에 그치면서 석탄 가격은 상승 압박을 받았다. 세계 최대의 석탄 소비국인 중국은 세계 석탄 시장의 가격 결정권자로서 국제 석탄 가격은 중국 내 석탄 가격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세계 최대 발전용 석탄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와 다른 석탄 수출국인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갈등은 석탄 가격을 더욱 끌어올렸다. 전력시장에서 석탄의 주요 경쟁재(대체재)인 천연가스의 높은 가격 또한 석탄 가격을 상승시키는 데 일조했다.

9월 말 기준 유럽의 지하 가스 저장량은 지난 5년 평균 수준보다 약 15% 낮았다. 이러한 낮은 저장량으로 인해 오는 겨울 유럽의 가스 수입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브라질에서는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10월 초까지 저수지 수위가 5년 평균치보다 25% 낮았고, 이는 수력발전을 어려워지게 해 향후 몇 달간 LNG 수입에 대한 추가 수요를 촉발할 수 있다. 겨울을 앞둔 상황에서 화석연료 시장의 공급 부족 현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향후 수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동인은 북반구에 닥칠 겨울철 혹한의 강도, 경제 회복 추세, 예기치 않은 공급량 감소 등일 것이다. 유럽에서 천연가스와 전기의 가격은 기온, 풍력 발전량 등 많은 요인에 의해 변동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는 기후가 수요와 공급 양측 모두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기후의 변화가 올겨울 시장 분위기를 좌우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단기적인 시장 혼란기로부터 소비자들,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국가들이 일부 세금이나 요금 관련 구제 조치를 취하는 모양새이지만, 이러한 조치는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전력망, 원자력 등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 환경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장기적으로 더욱 깨끗하고 탄력적인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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