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간 일했던 기계설비 분야, 앞으로도 협회의 단결과 기계설비 분야의 발전을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


  • ▲ ㈜신일이엔씨 윤석진 대표/대전·세종·충남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회장
    ▲ ㈜신일이엔씨 윤석진 대표/대전·세종·충남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회장

    지난 7월 21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제7회 기계설비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영예로운 대통령상을 받은 인물을 바로 대전·세종·충남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회장이자 ㈜신일이엔씨 윤석진 대표이다. 그는 이제껏 기계설비분야에서의 다양한 제도 개선, 산학 협력, 기술 지도, 품질 점검, 기술인 및 기능인 양성에 있어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반인들이라면 ‘기계설비’라고 하면 다소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국내 전체 연매출 36조 원에 전체 건설 공사비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2019년까지만 해도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별도의 법률이 존재하지 않아 생태계 조성과 확장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 4월, ‘기계설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제도적인 토양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향후 윤석진 대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제까지 해왔던 공로에 앞으로의 노력을 더한다면 윤 대표가 해낼 일은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를 직접 만나 그간 사업의 과정과 미래에 대한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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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공직자 생활 경험해

    윤석진 대표는 1979년부터 기계설비 공사업에 종사해오다가 1991년 신일이엔씨를 창립해 연매출 300억 원의 회사로 일구어왔다. 그는 대전공업전문학교 기계과, 한밭대학교 정밀기계과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을 수료했다. 그 후 한국토지주택공사, 도원엔지니어링을 거쳤다. 이후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대의원(2014~2017),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운영위원(2017~2020)을 역임한 후 2020년부터 현재까지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대전·세종·충남도회 회장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대통령상 수상은 윤 대표 개인적으로는 물론 협회 차원에서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수상소감부터 물어보았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는 남자가 출세하기 위해서라면 3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많든지, 뒷배경이 좋든지, 아니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가 돈이 많을리도 없고, 뒷배경이 좋을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능력 하나만이 저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난 세월을 혼신의힘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에 대통령상 수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간 숱하게 많은 사람과 일을 하며 수없이 많은 보람을 느꼈던 것 그 자체가 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그 이상의 상을 받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이제 앞으로도 회사와 협회의 발전을 위해서 마지막 남은 임기 동안 정성과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윤 대표의 이력 중에서 매우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의 근무이다. 그는 당시에도 기계설비분야의 발전을 위해 외국의 제도와 우리나라의 제도를 분석해 가장 적합한 정책들을 도출했으며 다양한 개선사항을 제안했다. 그는 공직자로 오랜 세월을 하면서 업계에서는 한마디로 ‘슈퍼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공 자체도 이공계를 했기 때문에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이렇게 공직자로 일하다가 실제 회사를 운영하고 협회 회장이 된 경우는 최초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경력은 그가 사업을 하고 협회를 이끄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저와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공직 생활을 할 때는 슈퍼갑이었지만, 지금은 을을 넘어서 병이 되기도 합니다(웃음). 그러나 이렇게 맨 꼭대기의 정책에서부터 맨 아래의 현장까지 알다보니 아무래도 보는 눈이 남다르고 사업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 이 됐다고 봅니다.”

    또 직접 사업을 하면서 건설 현장의 시공 품질향상, 건설공사 현장의 안전사고 예방, 신기술 및 신공법 적용을 통해 높은 수준의 공사품질과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드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성실, 안전 시공에 매진

    특히 그는 수많은 주요 국책 및 해외 사업실적을 쌓아왔다. 대표적으로 ▲대전도시철도 1-3공구(102신흥역) 시설공사 중 기계설비공사 ▲충청남도 도본청 및 의회청사 신축공사 설비공사 3공구 ▲카이스트 스포츠콤플렉스 신축공사 중 설비공사 ▲2014 인천아시아 경기대회 강화경기장 건설공사 설비/소 방공사 ▲제주혁신도시 국세청 이전 대상 기관청사 신축공사 중 설비공 사 등 학교, 연구소, 군부대, 지자체 공사를 성실 시공을 통한 에너지절 감과 효율 극대화 ▲대전 서구 도안신도시 17-1BL아파트 설비공사(1공구) ▲화성동탄(A12)상록아파트 건설공사 중 설비공사 ▲행정중심복합도시 2-2M2BL아파트 건설공사5공구(설비공사2공구) ▲대전IPARK CITY 1,2단지 일반설비공사 등에 참여해 성실 시공으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그는 기계설비산업의 이미지 개선에도 큰 역할을 했다. 지역 사회 모든 업체들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협력업체에 약속어음을 완전 폐지하여 협력업체의 유동성을 높였다. 이어 기계설비업체의 공정거래 이미지 고취와 특성화고등학교, 폴리텍대학, 우송정보대학, 한밭대학교 등 관내 관련학과 학생 및 교수들과 간담회, 강연을 통하여 미래지향적인 기계설비산업의 설명과 기계설비와 삶의질 향상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전망 있는 분야로 홍보하여 이미지 개선에 노력해왔다.

    특히 상호협력 및 상생 경영에서는 타의 모범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에 소속된 임직원 및 모든 근로자의 인건비는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했고 창사 이래 단 한번도 지연 또는 감해서 지급한 적이 없다. 또 상호협력을 위 해 회사에 소요되는 자재 및 장비의 납품 대금은 현금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는 신용보증금을 통한 전자결재로 어떠한 경우에도 납품업체가 억울하게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시스템화 했다. 이로써 원가절감이 수반되는 효과와 납품업체와 상호협력 및 상생 경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노사관계 및 근로환경 개선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그는 대한기 계설비건설협회 대전·세종·충남도회 회장으로 관내 대표이사들과 수시로 간담회를 개최, 변화되는 노사관계에 발빠 르게 대응하고 다양한 노사갈등을 사전에 예방할수 있도록 소통했다. 또한 회 사 내부적으로는 근로 시작 전 체조, 점 심 식사, 티타임 등 근로자와 만남과 소통의 시간을 갖고 애로사항을 청취하여 원활한 노사관계에 힘쓰고 있다. 특히 변화하는 근로자들의 인식변화와 안전 최우선, 펜더믹 상황을 고려해 현장의 모든 근로자는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하는 등 근로자 위주의 근무 시간 조정, 휴 식 시간 보장을 강력히 실시해왔다. 이에 따른 업무 추진은 효율적 시테크제를 도입해 집중 근로를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가 이렇게 노사관계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은 직원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 역시 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 청년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내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배웠으면 합니다. 설사 나중에 저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저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심정으로 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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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 중 최연소 한국전력 합격하기도

    또 그는 건설공사 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아무리 회사가 잘 된다고 해도 직원이 다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으로 더욱 강화된 안전사고에 대한 처벌과 국민의식 수준에 발맞추어 건설 현장의 작은 단위의 작업팀별로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또 공사시공 속도보다 안전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시공하고 있으며, 작업자들의 안전의식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부분들을 지켜왔기에 그간 안전사고가 예방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사실 윤 대표는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왔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지 63일 만에 돌아가셨고 홀어머니께서 그를 길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어려운 생활을 이어오면서 그가 처음으로 합격했던 곳은 바로 한국전력이었다. 더욱이 합격 동기들 중에서 ‘최연소'일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1979년 당시 우리나라에 막 원자력 붐이 일어나면서 한전에서는 그를 미국으로 발령을 내려고 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기술 이전을 받아 한국의 원자력 사업을 일구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윤 대표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는 점. 도저히 어머니를 혼자 두고 미국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한국전력을 포기하고 다시 시험을 쳐서 한국주택공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협회장에도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회원사들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밤낮없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와 대학 등의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설득하고 일을 진행되도록 만들고 있다.

    “현재 협회에는 약 800여 개의 회원사가 있으며 정회원사만 560여 개가 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지역 협회들의 매출이 줄어들었지만 유독 저희 협회만 매출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몸으로 뛰었습니다. 기관장들에게 만나자고 연락하고 제가 먼저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협회도 과거 보다 많은 발전을 한 것 같아 보람이 아주 큽니다.”

    특히 윤 대표는 ‘한국은 건설기술 분야에서는 선진국이지만, 건설 시스템은 후진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노력을 할 예정이다. 주경야독이라는 어려운 세월을 거치면서도 공직자, 사업가를 거쳐 협회장까지 역임하고 있는 윤석진 대표. 앞으로도 그에 의해 우리나라의 기계설비 분야가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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