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빈해원 소란정 대표

군산에서는 근대의 풍경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군산 내항을 뒤로 두고 있는 원도심은 대규모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중국음식점 ‘빈해원(濱海園)’도 그 거리에 있다. 이곳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건물은 적산가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것으로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72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유의 전통을 살린 맛과 분위기로 입소문이 자자한 이곳에서 소란정 대표를 만나 소망과 포부를 들어봤다. 


 

▲ 군산 빈해원 소란정 대표(사진=유미라 기자)
▲ 군산 빈해원 소란정 대표(사진=유미라 기자)

피난길에 군산에 정착한 가족, “나의 고향은 군산입니다”

“저희 가게는 내년이면 문을 연 지 꼭 70년이 됩니다. 처음 문을 연 것은 1952년입니다. 저는 가게가 문을 연 이듬해에 태어났고요. 이곳 군산은 제가 나서 자란 고향입니다. 인천에서 피난길에 올랐다가 군산에 정착하신 조부모님과 부모님, 고모님 내외분 총 여섯 식구는 단칸방에 살면서 작은 점포를 빌려 가게를 차리셨다고 해요. 1년 만에 자리로 옮기고, 또 옆 건물을 사서 자리를 넓혀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고모부님의 뒤를 이어 제가 운영하기 시작한 지는 30년 정도 됩니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에 정착했던 화교들은 대규모로 피난 뱃길에 오른다. 당시 여러 척의 배가 정박한 곳은 군산항. 그들은 이곳에 정착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중국 산둥성 출신이었던 왕조석 일가도 그 행렬에 있었다. 유능한 한의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생업을 위해 가족들과 힘을 모아 군산에 중국음식점 ‘빈해원’을 차린다. 한창 가게가 성업 중이었던 시절에도 그에게는 멀리서도 진맥을 받기 위해 환자들이 찾아왔다.

“가게 운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고모부님은 몸이 아파 찾아온 분들을 외면하지 못하셨습니다. 가게 영업 시작 전, 오전 10시 전까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손님들은 멀리서부터 이른 시간에 찾아오셨어요. 진맥을 보시고 나서는 꼭 한 그릇씩 식사하시고 뒷방에서 한숨 돌리고 가도록 하셨지요. 마음이 따뜻하셨고, 또 인품도 좋으셨습니다.”

 

▲ 군산 빈해원 내부(사진=유미라 기자)
▲ 군산 빈해원 내부(사진=유미라 기자)

손님을 위한 마음으로 지역사회에 보답할 터

군산 도심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절 빈해원도 전성기를 누렸다. 250석의 홀은 수시로 만석이 되어 손님들은 줄을 섰고, 점심시간에는 세 명이 동시에 수타면을 뽑아도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차가 잘 지나다니지 않던 시절에도 자전거 4대로 수시로 배달하기 바빴다. 음식 맛이 훌륭하기로 입소문이 나 인근에 있는 한국합판, 백화양조 등의 큰 기업 손님들부터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까지 빈해원을 늘 빠뜨리지 않고 우선으로 찾았다. 

그가 손님들에게 가장 고마울 때는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다’라거나 ‘맛이 맘에 들지 않는다’라며 솔직한 품평을 들을 때다. 초심으로 돌아가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도록 자신을 이끌어 온 것은 바로 이런 단골들의 애정 어린 충고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명의를 제 앞으로 돌린 지는 이제 10년 정도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가게는 저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잘 일궈두신 터전과 그 정신을 제가 잘 지켜갈 뿐이지요. 저희 가게에서는 인근의 다른 어느 곳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고 푸짐하게 드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정성스럽게 한 그릇, 한 그릇을 대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앞으로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군산시민께 받은 마음을 좋은 음식으로 잘 돌려드리는 것이 제 가장 큰 소임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빈해원 전경(사진=유미라 기자)
▲ 빈해원 전경(사진=유미라 기자)

빈해원은 모두의 공간, 군산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

빈해원의 건물은 중국 전통 양식의 구조와 형태를 재현한 양식이다. 1965년에 지어진 구조이지만 내부공간은 마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처럼 깔끔하다. 1, 2층이 개방된 내부공간과 각층에 여러 개의 방이 있는 구조가 특징적이고 곳곳에 배치된 소품도 이색적이다. 

영화 ‘타짜’, ‘남자가 사랑할 때’,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빛과 그림자’ 등의 작품과 ‘무한도전’ 등의 프로그램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덕분에 꽤 유명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 공간은 영업이 모두 끝난 시각 종종 대형 세트장으로 변신한다. 해마다 평균 서너 번 촬영 협조를 해왔는데, 올해에는 벌써 세 팀이나 촬영을 다녀갔다고 한다. 

“여기 보시는 테이블은 영화 ‘타짜’ 촬영 때에 촬영 소품으로 주문 제작했던 것입니다. 이후 저희가 그대로 테이블로 활용하고 있지요. 덕분에 홍보가 좀 많이 되기는 했어요. 저희 가게가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걸 대가로 그 어떤 것을 지급하지는 않아요. 저희는 공간을 대여하는 비용으로 그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홍보하기 위해 억지 수단을 쓰지도 않습니다. 그저 우리 지역을 좀 더 알리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공간이니 이를 더욱 많은 분들과 공유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근대 문화유산의 도시 군산, 제2의 부흥기를 맞을 것

빈해원이 위치한 곳은 군산시 장미동이다. ‘장미(藏米)’는 미곡창고, 곧 쌀 곳간을 의미한다. 과거 이 지역은 월스트리트와 같은 번화가였다. 원도심의 중심가인 이곳과 인근에는 구 군산세관 본관(사적 제545호)과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군산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국가 등록문화재 제374호)은 군산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국가 등록문화재 제372호) 등 근대 문화유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018년 빈해원 건물을 비롯해 구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국가 등록문화재 제726호), 구 남조선 전기주식회사(국가 등록문화재 제724호) 등의 문화재 등록이 결정된 바 있으며, 구 십자의원(국가 등록문화재 제760호)도 2019년 문화재 등록이 완료되었다. 

“사실 저희도 지금은 참 버티기 쉽지 않습니다. 12명씩 두었던 직원도 지금은 8명으로 줄였어요. 어려운 시기이기는 합니다만 곧 좋아질 겁니다. 예전에 이 주변은 밤이면 유난히 캄캄했어요. 해가 저물면 저희 가게만 불을 밝혔던 시절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많이 달라졌어요. 군산 내항 주변이 이렇게 개발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업체도 들어서고 하니 군산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군산시는 근대역사문화의 대표도시 중 한 곳으로서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올해는 군산시가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군산 내항 부근에 산재한 시설물과 건축물들이 차근차근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역사문화자원 발굴과 도시재생의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이들 공간은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매개하는 또 다른 거점으로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래된 가게가 자리한 군산의 그 거리에 서서 잠시 소 대표의 말을 되뇌어 본다. “저는 앞으로 30년 후, 군산의 경제가 다시 전성기를 맞고, 저희가 백 년 가게가 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의 말처럼 이 거리가 가게 주인과 손님들이 수십 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오랜 단골이 흔한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 각자가 자긍심을 갖고 당장 눈앞에 놓인 작은 이득보다는 정성과 신뢰를 주고받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이 무엇보다도 값지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때 또 한 곳의 백 년 가게는 문을 열 힘을 얻는다. 더 많은 곳에서 이러한 가치가 보편타당하게 여겨질 그 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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