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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파워로서 '문화산업'과 그 활용에 대한 고찰 -1- - 문화산업, 산업 너머로 미치는 경제적·외교적 파급효과 막대해
  • 기사등록 2021-10-25 12: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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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한류의 예로는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들 수 있다. 오징어게임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소프트파워의 한 예이다/사진 넷플릭스 제공

'강제나 보상이 아닌 설득과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

 

소프트파워에 대한 정의이다. 이를 국제역학 차원으로 옮기면, 군사력이나 경제제재와 같이 물리적 힘으로 표현되는 하드파워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교육·문화·예술·외교 등을 통해 상대국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란 용어가 처음 나온 건 1980년대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한창 냉전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소련과의 경쟁에서 앞서고자 쏟아부은 막대한 군사비에 더해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석유파동, 또 이로 인한 생산력 감소와 실업률 증대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은 그 내부에서조차 쇠락하기 시작했다는 여론이 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1990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제시한 것이 바로 소프트파워 개념이었다. 당시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의 ‘파워’ 개념이 군사력과 경제적 제재 등 강제와 위협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이었다면, 이것이 설득과 동의, 국제적 의제설정 능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점차 확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 교수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양 측면 모두에서 미국은 여전히 우위에 있고, 앞으로도 소련과 중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 등 동맹국들보다도 우위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진 이 개념은 학계뿐 아니라 각국의 정치인들까지 그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활발히 논의되고 연구돼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적극적인 소프트파워 전략을 들 수 있다.

 

인접국의 문화 상당수에 대해 그 기원이 자국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역효과를 내고 있는 중국의 행동은 차치하고라도, '유교'라는 상당한 타당성과 호소력을 지닌 문화를 토대로 자국의 매력을 확산하려 한 중국의 시도는 2000년대 '공자학원'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가 세계에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교육기관인 공자학원은 2015년 12월 1일 기준 전 세계 134개국에 500여 개가 설립됐고, 그중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초로 설립된 서울공자아카데미를 비롯해 총 22개의 공자학원이 운영됐다.

 

그러나 중국어를 직접 가르치거나 중국어 수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오던 공자학원은 2013년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폐쇄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공산주의 선전기구 및 첩보기구로 역할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또 교육과정과 교사 선정에도 자체적인 검열과 통제가 있으며, 각국에서 중국 민주화 운동, 인권 활동과 관련된 인물들의 동향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악용된다는 주장도 제기됨에 따라, 한때 100개를 웃돈 미국에서도 2020년 한 해에만 20개 넘게 폐쇄됐다. 그럼에도 2020년 말, 전 세계 162개국에서 총 541개의 공자학원이 운영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도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사례들이 다수 존재한다. 2012년 7월 음반으로 발매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와 SNS를 타고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음반발표 2개월 만인 9월 25일 기준 유튜브 조회 수가 2억 7,000만 건을 기록했으며, 이후 2014년 5월 말 기준 유튜브 최초로 조회 수 20억 건을 돌파했다. 당시 '말춤'과 우스꽝스러운 가사로 유명해진 이 노래로 인해 싸이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남미 등 전 세계 30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싸이 이전에도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가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베트남 등 같은 아시아권 문화에 퍼져 인기를 누린 적은 있으나, 서양권에까지 그 영향력이 미친 일은 흔치 않았다. 싸이로 인해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이 뿌리를 내린 뒤로는 파죽지세였다. 201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이 본격적으로 아시아권을 넘어 북미, 유럽, 중남미 등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2013년 데뷔한 이래 2021년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가장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소프트파워 사례이다. BTS는 미국의 음악잡지 《빌보드》에서 발표하는 '빌보드 200' 차트에 2015년 처음 입성한 이후, 3년 뒤인 2018년 아시아권 최초로 빌보드200 차트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매년 빌보트200 차트를 석권하면서 2021년 현재까지 점차 더 많은 팬의 사랑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이 현재까지 판매한 누적 앨범 수는 3,000만 장을 넘었으며, 세계적인 음악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된 성공 요인으로는 본인들만의 진솔한 이야기와 동시대 청춘들의 고민을 담은 노랫말, 관객의 흥미를 끄는 서사 구조를 지닌 콘서트, SNS를 통한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두터운 팬층의 전폭적인 지지 등이 꼽힌다.

 

2019년 개봉된 영화 '기생충'은 한류의 또 다른 예이다. 국내에서만 1,0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2020년 2월에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장르물로서, 빈부격차와 양극화로 인한 계급·계층 간 단절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아 이후로도 많은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프랑스, 스위스, 호주, 이탈리아 등 전 세계 37개국에서 개봉해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 한류의 예로는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들 수 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1위를 기록한 오징어게임은 액션·서스펜스 장르물로서, 기존의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장르가 대개 멜로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한다는 흔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뽑기', '구슬놀이', '줄다리기', '오징어게임' 등 한국적인 게임들을 통해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욕망과 좌절, 극단 경쟁, 사회 양극화의 폐해 등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측면에서 세계인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평가이다. 물론 플랫폼 운영을 통해 각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문화 콘텐츠를 대거 유통함으로써 세계 각지로 접근성을 확대해나가는 넷플릭스의 영업 전략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다양한 콘텐츠, 다양한 장르로 한류가 전파됨에 따라 한국문화를 소비하는 연령층의 스펙트럼도 훨씬 넓어졌다. 2000년 초중반의 한국 드라마 소비가 주로 아시아권의 30~50대 팬에서 이뤄졌다면, 이제는 한국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10~30대 층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에서 한국문화를 소비하게 된 것이다. 또 한국문화가 퍼지는 방식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등 급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따라 복잡다양해졌다.

 

이러한 한류 열풍은 문화산업 자체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문화산업은 그 자체의 수익보다도 주변 산업에 미치는 긍정적 외부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개별 문화콘텐츠 소비로부터 얻는 즐거움과 효용 외에도 관광으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효과,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로 인한 수출 증가 효과 등이 함께 발생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국내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 수는 1,750만 명에 달했다. 2010년 880만 명을 기록한 이래 9년 만에 2배가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관광사업체들의 매출액도 2010년 17.9조 원에서 2019년 26.8조 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소프트파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실히 실감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국가 간 무역량은 정치적 관계, 경제 규모, 물리적 거리, 교역 정책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최근 '문화적 근접성(Culture Proximity)'이라는 개념이 새로이 등장하며, 국가 간 무역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적 근접성이란 국가 간 문화가 서로 비슷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수록, 서로의 무역량 역시 증가한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한국수출입은행이 2019년 6월 발표한 '한류 문화콘텐츠 수출의 경제효과'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의 데이터 분석 결과, 문화콘텐츠 수출이 100달러 증가할 때 의류, 화장품, 가전, 휴대폰, 가공식품 등 소비재 수출이 248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달리 말해, 해당 지역에 한류 문화콘텐츠 수출이 증가하면 그것의 2.48배만큼 소비재 수출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방탄소년단(BTS)의 경제적 효과'란 제목의 보고서 역시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BTS 콘서트 관람 등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연평균 79.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2017년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 1,042만 명의 약 7.6%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또 BTS의 인지도가 1p 상승할 때마다 의복, 화장품, 음식류 등 소비재 수출에서 유의미한 증가 효과가 발생했으며, 그 규모가 연평균 11억 1,700만 달러로 추산됐다.

 

결과적으로 BTS로부터 창출된 연평균 생산유발효과는 4.1조 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1.4조 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2016년 국내 중견기업 평균 매출액인 1,591.7억 원의 약 35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즉, BTS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가 연간 35개 중견기업이 달성하는 매출액 총액과 같다는 의미이다. BTS가 직접적으로 창출하는 '음악'이란 문화콘텐츠가 단지 문화콘텐츠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기업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향상과 제품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이어져 제조업 수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실증된 것이다.

 

2018년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는 미국 성인 중 77%가 우리나라에 호감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2000년대 초 미국 성인 중 50%가량만이 우리나라에 호감도를 갖고 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이다. 이러한 호감도의 상승이 한국 제품 수출 증가로 이어지리란 전망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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