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후이익 서거 200주년 학술대회기념사진(사진=KOVECA)
▲  판후이익 서거 200주년 학술대회기념사진(사진=KOVECA)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지 3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다. 두 나라는 1992년 12월 국교 수립 후, 30년간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다져 나갔다.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며 협력의 폭을 확장시킨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의 3대 수출시장(중국, 미국, 베트남 순)이자 4대 교역국(중국, 미국, 일본, 베트남 순)으로 한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이다. 2019년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는 692억 달러를 달성했는데, 이는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재개한 1992년 대비 140배 성장한 것이다. 특히 베트남은 한국의 아세안 제1위 교역대상국으로 그 비중이 45.8%에 달한다. 

식민지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겪은 두 나라가 이제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여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현장인 판후이익 서거 200주년 학술대회를 통해 한-베 수교 30년의 의미를 다져보자. 

반기문 제8대 UN 사무총장 축하 영상 보내

금년 한베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하노이에서는 의미있는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베트남 외교 역사의 거장 판후이익(潘輝益:1751-1822) 서거 200주년 기념학술대회가 지난 3월 22일 하노이, 꾸옥오아이(Quốc Oai)현 사이선(Sài Sơn)면 인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것이다. 판후이익은 떠이선(西山) 왕조 시대 뛰어난 외교술을 통해 18세기 당시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던 청나라와의 전쟁을 막았다는 공을 세운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베트남한놈연구원(원장:응우옌뚜언끄엉)과 판(潘)씨 종친회(회장:판후이후언)가 공동 주최하고, 한‧베경제문화협회(KOVECA:회장 김길수)의 후원으로 베트남의 한문 학자와 판(潘)씨 후손 등 모두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특별히 금년 한‧베 외교관계 수립 30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학술대회에, 세계 외교계의 큰 어른 반기문(潘基文)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이 영상으로 축사를 하여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반기문 전)유엔 사무총장은 2015년 5월 20일 UN 사무총장으로 재임할 때 베트남 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반(潘) 총장은 쯔엉떤상(Trương Tấn Sang) 국가주석 및 베트남 정부 지도자들을 만났다. 5월 23일에는 판후이익의 3남 판후이쭈(Phan Huy Chú) 사당을 방문 분향을 하고 문중 인사들과 환담한 인연이 있다. 당시 베트남 언론에서는 반(潘) 사무총장이 판(潘)씨 후손이라며 큰 관심을 가지고 취재한 바 있다. 

반(潘) 전)유엔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국제사회에서 외교는 총성없는 전쟁입니다. 조국을 위해서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서 청(淸)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떠이선(西山) 왕조의 사신으로 1790년에 청나라에 파견되어 청(淸)나라와 목숨을 건 외교전을 벌인 판후이익(潘輝益) 선생이 무한 존경스럽습니다. 한민족에도 고려 시대의 북진정책과 친송 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이 993년에 고려를 침략하자 거란(契丹)을 설득해 80만 군사를 돌려보낸 탁월한 외교가 서희(徐熙) 선생이 있습니다. 레(黎) 왕조, 떠이선(西山) 왕조와 응우옌(阮) 왕조에 이르기까지 세 왕조에 걸쳐 헌신한 위대한 외교가이신 판후이익(潘輝益)선생을 조상으로 모신 판(潘)씨 가문에서 조국 베트남을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후손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사를 해서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 판후이익 선생이 조선국 사신에게 준 한시를 서예가 중허 홍동의 선생이 서예화(사진=안경환 이사장)
▲ 판후이익 선생이 조선국 사신에게 준 한시를 서예가 중허 홍동의 선생이 서예화(사진=안경환 이사장)

232년 만에 조선 사신에 준 베트남 사신의 한시 2편 발견

판후이익은 1790년 청(淸)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35–1796)의 팔순 잔치에 축하사절로 연경에 파견되었고, 조선에서 온 사신과 만나 필담을 주고받았다. 두 나라의 사신들이 주고받은 한시 2편이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학술대회에 총 18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유일한 한국인 발표자인 안경환 한국글로벌학교 이사장은 학술대회 발표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판(潘)씨 종중 문집에서 뜻밖의 사료(史料)를 찾아냈다. 한시 2편을 232년 만에 발견한 것이다. 시가 전해진 과정은 이러하다. 

청나라에서 열린 건륭제 팔순 잔치에 조선에서는 정사(正使)로 황병례(黃秉禮), 부사(副使)에 이조판서 서호수(徐浩修), 서상굉문관교리(書狀宏文館校理) 이백형(李百亨), 「북학의(北學議)」의 저자인 실학자 박제가(朴齊家)가 수행원으로 갔다. 

이 잔치에 베트남 떠이선 왕조를 세운 꽝쭝(光中) 황제도 직접 참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꽝중 황제는 1789년 1월에 동다(Đống Đa) 전투에서 손사의(孫士毅)가 지휘하는 청나라 군사를 대파했기 때문에, 이듬해 열린 팔순 잔치에는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떠이선 왕조의 대표적 실학자였던 레꾸이돈(黎貴惇, 1726~1784)을 필두로 판후이익 등이 사신으로 갔다. 판후이익이 꽝중 황제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는 가짜 왕을 수행하며, 조선의 사신을 만나 한시를 주게 된 것이다. 

조선 사신 박제가와 판후이익이 만나 주고 받은 시는 ‘성사기행(星槎紀行)’과 판씨 문중집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한시는 ‘판후이익 공(公)이 박제가 사신에게 화답한 시(侍 宴 西 苑, 朝 鮮 書 記 樸 齋 家 攜 扇 詩 就 呈, 即 席 和 贈)’와 ‘조선국 사신에게 보낸 시(柬朝鮮國使)’ 총 2편이다. 특히 조선국 사신에게 보낸 시의 내용에는 풍칵콴(憑克寬, 레왕조 베트남 사신)과 이수광(李粹光, 조선의 사신)이 1597년 연경에서 만나 필담을 나누고 시를 주고받은 사실이 나오면서 사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풍칵콴이 이수광을 만나 필담을 나눴다는 기록은 양국의 사료를 통해 검증이 됐지만, 베트남 떠이선 왕조에서 레꾸이돈 등이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1760년 12월 조선의 사신 홍계희, 조영진, 이휘중을 만나 화선지, 부채, 약재 등 특산물을 서로 주고받고 시를 지어 교환하였다는 것은 우리 측 자료로만 남아있었다. 

조선과 베트남 봉건 왕조에서 양국이 외교적 교류를 한 것은 사실상 떠이선 왕조가 근현대 이전 우리와 마지막으로 교류한 베트남 왕조로 인식되고 있다. 베트남은 18세기 이후 응우옌(阮) 왕조와 프랑스 영향과 식민지배기를 보내면서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이탈했고 인도차이나 전쟁 등을 통해 관련 자료가 상당히 소실됐기 때문이다.

학술대회 공동 좌장을 맡은 안경환 이사장은 “이러한 교류 사실의 발견은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 확대에 매우 중요하고 학문적인 가치가 높은 사료이며, 앞으로 추가적인 발굴이 기대될 뿐만이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 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코베카(KOVECA)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판후이익 선생이 조선의 사신들에게 준 한시 한편을 중허(中虛) 홍동의(洪洞義) 서예가가 쓴 작품을 판(潘)씨 종중 사당에 기증하여 232년 만에 한국 민족과 베트남 민족의 끈끈한 우의를 재현하였고 한‧베 수교 30주년 기념의 의미를 더하였다. 베트남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 VTC, 하노이TV, 하노이신문, VOV(Voice of Vietnam)에서 취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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