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 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우리 전통춤을 알리는 우리나라 문화계의 소중한 보석 같은 인물이 있다. 바로 <동경 한국 전통 예술원> 유미자 원장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전통 무용에 푹 빠져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실력을 쌓았으며, 지난 2004년 동경 한국 전통 예술원을 열었다. 2016년 한국에 거주하면서부터는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공연을 펼치면서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현재 세종대학교 미래 교육원 한국전통무용 마스터 과정 책임교수로서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유미자 원장에게 그간 한국 전통 무용과 함께 살아온 삶의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동경 한국 전통 예술원 나령유미자 원장
▲ 동경 한국 전통 예술원 나령유미자 원장

 집안 반대 무릅쓰고 일본에서 무용 배워

유미자 원장은 매년 일본 동경에서 13차례 정기 공연을 해 온 것은 물론, 다양한 행사에 초대를 받아 공연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해도 국내에서 제6회 강남국악예술단 정기공연(살풀이춤 단체), 한국자유총연맹충청남도지부(장고춤), 제5회 태학사산사음악회(장고춤), 제3회 국립망향의동산 합동위령문화제, DARA 창립1주년 기념음악회, 한국예인열전-실록편에서 무용을 선보였다. 일본에서의 공연도 이제까지 수십 회에 이르러 일일이 거론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재일본 민단 동경 에도가와지부 2020년 신년회, 2019 미스코리아 일본 대표 선발대회 등에서 공연했으며 심지어 미국 센트루이스 국립미술박물관, 브렌트우드 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전통무용 추석 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이런 바쁜 일정에서도 2016년도에는 중앙대학교 국악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다양한 실력을 인정받아 2014년 제10회 홍성가무악 전국대회 종합대상에서는 국회의장상, 2018년 제5회 대한민국 평화통일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한국 무용에 관한 한 유미자 원장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 활동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당연히 한국 무용의 뿌리는 한국이고, 후배를 양성하며, 더 많은 한국인에게 한국 무용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일본에서 한국을 오가는 시간들이 적지 않게 걸려서 낭비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완전히 정착했으니 앞으로도 시간 낭비 없이 더 많은 열정을 한국 무용에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정착하기까지는 한국에서 이뤄진 남편과의 만남도 큰 역할을 했다. 중요한 사실은 남편의 외조가 매우 컸다는 점이다. 더 나은 실력을 위해 여러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전국 각 지역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장거리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것을 남편이 감당해주었던 것. 또한 국내의 유명 선생님과의 연결이 가능해져서 보다 수준 높은 실력과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공연연습을 할 수 있는 학원까지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유미자 원장에게 남편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유미자 원장이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원했던 딱 한 가지가 바로 ‘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이는 무용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한국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현재 천안 국악협회 부지부장, 천안갤러리아 커뮤니티 무용강사, 서울 강남문화원 무용강사를 하고있는 것도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2004년부터 일본에서 공연 시작

유미자 원장이 이렇게 한국 무용의 거장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어린 시절의 힘들고 고된 배움의 과정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용에 무척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집안에서는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10대에 한국 무용에 입문했는데, 집에서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춤을 추면 팔자가 사나워지니까 안된다고 하셨죠. 당연히 무용을 배워야하는 학원비 등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언니의 도움을 받아 1989년경 유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는 특수분장 메이크업이 성행하여 학원비 등을 마련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한국 무용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년간 무용을 사사받으면서 유미자 원장은 실력을 키워왔고 드디어 2004년에 동경 한국 전통 예술원을 개원하면서 인재 양성과 공연을 동시에 해나가기 시작했다. 2005년 최초로 다이도구 미래니암 홀에서 ‘유미자의 춤놀이 첫 번째 춤판 일본 도쿄’를 열었고 이후 산파루 아라가와 대홀 등에서 매년 정기공연을 했다. 그때 유 원장이 깨달았던 것은 일본인들도 한국인의 춤사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한번 공연하게 되면 교포들도 오고 일본 현지인들도 많이 왔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춤사위에서 볼 수 없었던 한국 무용의 역동성과 아름다움에 큰 감동을 했습니다. 또 의상의 아름다움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공연하면 한 80~90%는 교포들이 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반대로 80%가 일본인이고 20%가 교포들이었습니다. 첫 공연을 한 뒤에 다음 공연은 홍보할 필요도 없이 관객들이 꽉꽉 들어찼으며, 후원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유미자 원장의 대표적인 무용은 살풀이춤, 장고춤, 진도북춤, 교방춤, 전통 굿거리춤 등 다양한 춤을 추고 있다. 수준급의 공연을 하면서 점차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유튜브 영상에 “유미자 춤놀이”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공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어르신이 있다고 한다. 당시 67세의 고령의 여성 수강생이었는데, 춤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6년 전부터 활동 자체가 힘들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안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춤에 대한 열정으로 조금씩 배워나가기 시작했고, 초기에는 10분 무용을 배운 후 20분을 쉬어야 할 정도로 난항이었지만, 결국에는 춤으로 인해 건강을 회복하고 근력까지 생기셔서 개인 발표회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이 모습에 유미자 원장은 물론 함께 수강했던 수강생들까지 모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 무용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우리 몸과 마음에 큰 활력소가 되어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일상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어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특히 긴 치마에 가려서 다리 움직임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오묘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발디딤의 자세에서부터 어깨, 팔, 손의 춤사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춤도 3개월 정도는 다소 힘들 수 있지만, 그 시간만 지나면 기본기가 갖춰지면서 점점 재미있어지는 시기가 오게 마련입니다.”

한일문화 교류 다시 활발해졌으면

유미자 원장의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고 일본과의 교류도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입출국조차 쉽지 않은 상태이고, 여기에 한일관계가 경색된 나머지 교류도 활성화되지 않아 아쉬운 점이 참 많다고 한다. 특히 한국 무용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그 감동을 계속해서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앞으로 어떤 무용가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유미자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비록 이 세상에 태어나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것은 단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에는 사람 이름 하나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무용가, 그리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무용가로 남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는 한국 무용으로 이름을 떨친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분야와 영역에서 열심히 할 따름입니다. 욕심 없이 저의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녀는 ‘예술은 죽어서야 끝이 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늘 무대에 작품을 올리고 최선을 다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숙제가 남고 아쉬움이 느껴진다고 한다. 결국 그래서 그 완성을 위해서는 끝이 없는 것이 예술이라고 본다고.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한국 무용에 끌렸다는 유미자 원장. 현재도 유 원장은 살풀이춤으로 유명한 인간문화재인 정명숙 선생님으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꿈의 완성을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무용을 사랑하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한국 무용을 알리고 제자를 양성할 수 있는 한국 전통 무용계의 대부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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