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해지는 것, 나눔으로 희망 전할 것”


사단법인 나눔문화예술협회 유현숙 이사장
▲ 사단법인 나눔문화예술협회 유현숙 이사장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훌륭한 일은 한 생애를 통해 일관된 일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아일랜드의 한 소설가가 남긴 말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나눔’으로 일관해 온 사단법인 나눔문화예술협회 유현숙 이사장에게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던 유 이사장에게 어쩌면 나누면서 사는 삶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이사장은 어릴 때부터 상황이 딱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런 유 이사장의 성격은 나눔 활동을 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확대했고, 단순한 나눔에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멘토 역할로 발전하게 했다.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유 이사장을 만나 그의 삶과 나눔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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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일상…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딱한 사정 못 지나쳐

지금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별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유 이사장이 청소년기를 보내던 당시 우리나라는 대부분 가난했다. 옷이나 장갑 등 방한 도구가 충분치 않아 겨울이면 손이 튼 아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덜 가난했던 유 이사장은 손이 튼 아이들을 보고 자기 스웨터를 풀어 생긴 실로 손이 튼 아이들에게 줄 장갑을 짰다. 부모님께 혼쭐이 났지만,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고교 시절에는 수학여행비가 없어 여행을 못 가는 반 친구에게 자기의 경비를 전부 준 적도 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수업료를 내지 못해서 꾸중을 듣거나, 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성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0대 초반 경남 창원시에서 건강클리닉을 운영해온 그는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 직원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게는 내가 오픈했지만, 돈은 직원들이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들한테 10년 근무 후 직접 운영하라고 말한 후, 10년 후 약속대로 하자고 했더니, 직원들이 더 배워야 한다며 극구 사양했다.”  


그래서 그 약속이 5년이 미루어졌고, 5년 후에 경영에서 손을 떼는 대신 나눔 활동을 중단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나눔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들이 주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단체 설립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 이사장은 나눔문화대상을 수상하는 등 계속해서 나눔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단체 설립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이 바뀐 건, 일본에서 유명한 공연을 보고 난 후였다.


“일본 NHK방송 관계자의 초청으로 신년 음악회를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차이코프스키홀)이 가득 찰 정도로 공연이 인기였죠. 공연석 바로 앞자리에 노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할머니가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있었어요. 연세도 많고 다리도 다쳐서 거동이 불편할텐데 음악회에 참석한 것이 놀라워, 공연이 끝난 후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노 부부는 10년 동안 이 공연을 한 번도 빼놓지 않았다고 대답하더군요. 공연 보는 것을 즐겨하지 않던 저로서는 놀라웠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단원의 호흡도 놀라웠다. 오케스트라가 움직이는 지휘봉 하나에 10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차 없이 호흡을 맞추는 점도 신기했다. 지휘자가 외국인이어서 단 4일밖에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 관객들은 지휘자가 자리를 벗어나 다시 올 때마다 기립박수로 맞았다. 이것이 공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협회 설립에 착수해 2012년 10월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협회 설립 이듬해인 2013년 1월 러시아 유명 첼로리스트를 초청해 KBS홀에서 공연을 했다.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무료 초청하고 나머지 표는 유료였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독일의 유명 피아니스트를 초청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었다. 소외 계층을 위한다고 시작한 공연이 정작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멀리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시는 분들은 그것 자체로도 부담이 됐고, 교통비며 평범한 관객들과의 비교에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등, 위안을 주기 위한 공연이 반대가 되는구나하고 생각하니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후 전략을 바꿨다. 협회 정관을 개정하고 농산어촌 등 지방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를 파견, 소외계층에 교육까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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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빈국 라오스에 학교 17개 설립

주 대한민국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명예대사가 된 계기를 물었다. “2008년 제주도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렸고, 당시 행사장에 파견돼 라오스 총리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유 이사장이 본 라오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변변한 학교가 없어 처마 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 아이를 업고 수업하는 선생님 모습. 그마저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할 수 없는 현실. 당장 학교를 지어주겠노라고 말했다. 똑같은 약속을 하고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는 라오스 장관의 말을 듣고 더욱 결심을 굳혔다.


“오토바이, 컴퓨터, 신발 등등 별별 물건을 다 가져다 줬어요. 심지어 방송국 기자재까지 가져다 방송국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국내 상황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방송 장비가 전환되고 있는 무렵이라서 한 방송사 대표를 졸라서 아날로그 방송기자재를 전부 라오스에 가져다 줬다는 것이다.

 

국내외 창업 지원으로 청년에게 꿈과 희망 주고파

국내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나눔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청년일자리창출을 위한 일환으로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내 지식라운지에서 창업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 현실인데, 사실은 일자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창업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국내에서 창업 성공률이 높지 않으니, 신남방국가로 보내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성장시키자고 결론을 내렸다. 유럽이나 선진국보다 동남아에서의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라오스에서 자리 잡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창업에 성공하는 청년도 하나 둘 씩 생겨나고 있다. 한 청년은 자본금 500만원으로 창업해서 3년 만에 150억원의 매출 달성이 예상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사례가 많아져 많은 청년들이 창업에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다.


“제가 청년들로부터 얻는 것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머슬마니아라는 종목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종목입니다. 내가 어려운 일에 직접 도전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두 달 동안 하루 다섯 시간 씩 죽을 만큼 운동해 대회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나눔은 받는 사람만 행복한 게 아니고 주는 사람도 행복한 것입니다.”라는 유 이사장의 말이 어려운 현실에서 희망 없는 청년들에게 자립심과 당당함을 일깨워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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