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전쟁' 한미그룹 주총서 임종윤·종훈 형제측 완승...5명 이사회 진입, 경영권 장악
'상처뿐인 영광' 임종윤 사장 "화해 제스처'...감정골깊어 쉽게 봉합될 지는 미지수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이사진 구성 표대결에서 승리한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온가족이 '모녀'와 형제로 편을 갈라 석달가까이 진흙탕싸움을 벌여왔던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 형제가 마지막에 웃었다.

28일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창업주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주주 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50%를 훌쩍 넘는 지지를 얻으며 모두 통과됐다.
 
송영숙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한 임주현 부회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등 OCI와의 통합을 추진해온 모녀측 추천 이사 6명은 모두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다.
 
◆소액주주 지지에 극적 역전승...OCI통합 전면 백지화
 
박빙의 표대결에서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주총을 앞두고 양측이 확보한 지분은 모녀측(43.00%)이 형제측(40.57%)로 약 2%포인트 이상 앞서있었다.
 
결국 16.7%에 달한 소액주주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형제 진영의 손을 들어줬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의 모녀팀은 국민연금(7.66%)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승리를 장담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이로써 전대미문의 온가족간 경영권다툼의 빌미를 제공한 한미그룹과 OCI그룹 간의 통합은 지난 1월12일을 기점으로 본격 추진된 지 두달여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OCI그룹은 통합 반대파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이사 선임 표대결에서 완승하자, 즉각 "통합 중단"을 선언했다. "앞으로 통합 재추진 계획이 없다"며 못을 박았다.
 
임종윤‧종훈 형제가 28일 주주총회 후 악수하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종윤‧종훈 형제가 28일 주주총회 후 악수하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그룹의 거버넌스는 전면 재편됐다.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총 9명 가운데 형제측 인사가 5명으로 과반을 넘어 그룹의 주요 의사 결정의 주체가 모친인 송회장에서 두 아들쪽으로 넘어갔다.

송 회장이 비록 대표이사이고 보드진의 4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과반수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에 두 아들의 동의없이 할 수 있는게 별로없다.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으로의 후계 승계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송 회장은 주총을 코앞에도 두고 후계 승계구도에 대못을 박기 위해 사장인 장녀를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두 형제를 사장직에서 해임시켰지만, 주총에서 완패하며 모든 게 꼬이게됐다.
 
그렇다고 해서 두 형제가 완벽히 경영권을 장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양측의 지분 차이가 거의 없어 언제든 경영권이 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 장악에는 성공했지만, 이겨도 이긴 게 아니란 얘기다.
 
모친과 동생을 대상으로 벌인 진흙탕 싸움에서 역전, 재역전을 반복하며 결국 마지막에 웃었지만, 두 형제가 막판뒤집기를 하는데 일등공신인 소액주주의 표심이 다음 주총에서 어떻게 바뀔 지 아무도 모른다.
 
◆감정의 골깊어진 모녀와의 관계회복 등 과제 산적
 
재계 안팎에서 임종윤·종훈의 한미그룹의 진정한 경영권 경쟁은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란 분석이 나온다. 주요 사업 비전과 경영전략 등에서 송회장측과 견해 차이가 워낙 커서 향후 크고작은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임종윤·종훈 형제가 주총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후 가족과의 화합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심하게 대립했지만, 같이 가겠다는 것이다.
 
이번 경영권 싸움을 진두지휘한 임종윤 전 사장이 주총 직후 가장 먼저 꺼낸 말도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며 "어머니·여동생과 화합을 시도하겠다"였다.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 사진=뉴시스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 사진=뉴시스

그러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발생한 감정의 골이 깊어 쉽게 화해에 이를 지는 미지수다. 송 회장은 29일 그룹사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OCI와의)통합이 최종 성사에 이르지 못해 회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이라며 "조금 느리게 돌아갈 뿐 변함없이 가야 할 길을 가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송 회장은 이어 "경영진과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가 힘을 합쳐 신약 명가 한미를 지키고 발전시킬 방안을 다시금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일단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이고 새 이사진과 협력을 시사했으나, 두 아들과의 앙금이 가라앉기까진 적지않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송 회장 가족에게 남은 상속세 미납금도 새로운 대안을 시급히 찾아내야할 문제다. 지난 2020년 8월 임성기 회장이 타계하면서 배우자인 송 회장과 세 자녀에겐 5400억원 상당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송 회장 가족은 이후 3200억원은 해결했으나 아직 2200억원이 남아있다. 송 회장은 부득이하게 투자 회사를 찾다가 어렵사리 OCI와 손을 잡은 것이다. 양사의 통합을 통해 현금을 확보, 남은 상속세를 해결하려했던 것이다.
 
이에 두 형제가 딴지를 걸면서 갈등이 표면화됐고 결국 이번 주총에서 표대결 끝에 패배하며 송 회장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2개월여 전쟁을 방불케하는 가족간 내분으로 인한 한미그룹의 이미지 개선과 후계자로 지정된 임주현 부회장과의 협력 등도 주총 승리로 경영권을 잡은 두 형제가 조속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경영권을 놓고 모친과 여동생을 상대로 비방전과 법적다툼까지 벌이며 갈데까지 간 상황에 극적인 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한 임종윤·종훈, 한미그룹 장차남이 '상처뿐인 영광'을 씻고 가족 대화합과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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